
술은 기분을 풀어주는 사회적 도구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정교한 화학 반응의 결과물이다.
맥주든 소주든 핵심 물질은 에탄올(ethyl alcohol)이다.
이 에탄올이 간에서 아세트알데히드로 분해되고,
다시 아세트산으로 전환되어 에너지로 쓰인다.
문제는 그 중간 과정에서 생기는 독성 부산물이다.
맥주는 가볍게 마신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한 병(500ml)에는 평균 20g의 에탄올이 들어 있다.
소주는 한 병(360ml) 기준 약 40~45g.
즉, 맥주 두 병은 소주 한 병에 거의 맞먹는다.
1. 도수보다 중요한 건 흡수 속도
맥주는 상대적으로 낮은 도수(4~5%)를 가진 대신
탄산이 알코올 흡수를 빠르게 만든다.
이산화탄소가 위 점막을 자극해
알코올이 혈류로 더 빨리 흡수되기 때문이다.
반면 소주는 도수가 높아 위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다.
흡수는 느리지만, 일단 혈중 알코올 농도가 오르면
중추신경 억제 효과가 강하게 나타난다.
즉, 맥주는 빠르게 취하게 하고,
소주는 늦게 무겁게 취하게 한다.
2. 간의 처리 속도와 숙취의 원리
간은 시간당 약 0.1g/kg의 알코올을 분해한다.
몸무게 70kg 성인이 한 시간에 처리할 수 있는 양은 약 7g.
맥주 한 잔을 마시면 3시간,
소주 한 병을 마시면 6시간 이상 걸린다.
숙취는 아세트알데히드가 완전히 분해되지 않았을 때 발생한다.
이 물질은 뇌의 혈관을 확장시켜 두통을 일으키고,
위 점막을 자극해 구토를 유발한다.
유전적으로 ALDH2 효소가 약한 사람은
이 독성 물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얼굴이 붉어지고 심박수가 빨라진다.
2025년 서울대 의과대학의 대사유전학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의 약 36%가 ALDH2 효소 활성이 낮은 변이를 가지고 있다.
즉, 체질적으로 ‘술이 약한 사람’은 진짜로 약한 것이다.
3. 맥주 vs 소주: 체내 반응의 차이
맥주는 수분과 미네랄 함량이 높아 탈수를 덜 유발한다.
또한 홉(hop)에 들어 있는 루풀론과 쿠물론이라는 물질이
소염 및 진정 작용을 한다.
이 때문에 맥주를 마셨을 때 "편안한 취기"를 느끼는 것이다.
반대로 소주는 고도수 증류주로,
알코올의 순도가 높고 체내 탈수 속도가 빠르다.
이로 인해 혈중 삼투압이 급격히 높아지고,
신장이 수분을 빼앗기며 갈증이 심해진다.
또한 소주에는 증류 과정에서 생긴
미량의 메탄올, 아세톤, 퓨젤 오일(fusel oil)이 포함되어 있다.
이 불순물들이 숙취를 악화시킨다.
4. 알코올과 도파민 시스템
술이 기분을 좋게 만드는 이유는
뇌의 보상 회로에서 도파민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에탄올은 GABA(억제성 신경전달물질)를 활성화시켜
불안을 낮추고 긴장을 완화한다.
하지만 동시에 도파민이 급상승하면서
일시적인 쾌감과 사회적 자신감을 만든다.
문제는 반복적 음주가 이 회로를 둔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2024년 하버드 신경정신의학 연구에 따르면,
주 3회 이상 음주자는 도파민 수용체 민감도가
비음주자보다 평균 18% 낮았다.
결국 술은 ‘기분을 좋게 하는 약’이 아니라
‘기분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어려운 약’이 된다.
5. 맥주와 소주의 칼로리, 지방 대사 영향
맥주 500ml 한 병은 약 210kcal,
소주 한 병은 약 520kcal.
둘 다 탄수화물 대사에 영향을 미쳐
인슐린 분비를 촉진한다.
특히 맥주는 맥아의 당분 때문에
복부 지방 증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2025년 캐나다 맥길대의 대사연구에 따르면
정기적으로 맥주를 마시는 그룹은
동일한 알코올량의 소주 섭취 그룹보다
복부 지방률이 평균 11% 높았다.
반대로 소주는 간 지방 축적률이 15% 더 높았다.
즉, 맥주는 겉살을, 소주는 속살을 만든다.
6. 숙취를 줄이는 과학적 방법
수분 보충: 알코올 분해에 물이 필수적이다.
술 한 잔당 200ml의 물을 함께 마시면
혈중 알코올 농도를 낮추고 탈수를 방지한다.
비타민 B군 섭취: 알코올 대사 효소의 보조인자로 작용한다.
특히 티아민(B1)은 간 피로 회복에 중요하다.
단백질 식사: 위에서 알코올 흡수를 늦추고
혈당 급상승을 완화한다.
적정 속도: 체내 효소는 일정 속도로만 작동한다.
술은 ‘양’보다 ‘속도’가 숙취를 결정한다.
7. 맥주와 소주의 사회적 차이
맥주는 ‘함께 나누는 음료’의 상징이다.
낮은 도수 덕에 긴 대화와 함께 어울리고,
문화적으로는 여유와 교류의 매개체로 자리 잡았다.
소주는 반면 ‘정서적 압축’의 상징이다.
짧은 시간에 강한 취기를 주며,
한국 사회에서는 감정의 배출구 역할을 한다.
과학적으로는 도수 차이지만,
문화적으로는 인간 관계의 온도 차이다.
마무리: 술은 화학이고, 선택은 철학이다
맥주는 신체를 느슨하게, 소주는 정신을 무디게 만든다.
하나는 천천히 스며들고, 다른 하나는 빠르게 타격한다.
결국 중요한 건 ‘무엇을 마시느냐’가 아니라
‘왜 마시느냐’다.
2025년의 과학은 이렇게 정리한다.
"술은 감정의 도구가 아니라, 화학의 실험이다."